루즈벨트 시대는 히어로들에겐 말 그대로 골든 에이지라는 이름에 걸맞는 멋진 시대였다. 때려눕힐 강력한 악당이, 영웅들이 힘을 합칠 이유가 있었다. 마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히어로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멘토였다. 그는 '프로젝트 리버스'를 진두지휘하여 스티브 로저스를 슈퍼 솔저로 만들고, 그를 유럽 전장으로 보내어 나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이 영화는 관객의 머릿속에서 거의 천번쯤 재생되었을 웨인 부부의 총격사건 같은 걸 보여주는 데에는 아까운 시간을 펑펑 써대면서 정작 필요한 최소한의 컷을 포함시키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태도는 액션 시퀀스에서까지 이어진다. 시끄럽고 거대한 건 알겠지만 액션의 합이나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다면 사운드를 최대로 켜둔 화면조정시간과 다를 게 없다. 잭 스나이더는 이후 공개될 감독판(확장판)을 기대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감독이 극장 상영판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의 꼴을 제시하지 못하고 "감독판을 기대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테러 등 안보의 큰 위협을 겪고, '시빌 워'로 좌우가 나뉘어져 이념 대결이 이어지고, 그런 가운데 경제가 실패해 거리에 홈리스가 넘쳐나는 미국. 보다 못한 S.H.I.E.LD. 출신의 한 강령술사가 흑마술로 전직 대통령들을 부활시킨다. 지난날 조국이 처했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을 잘 살게 해 주었던 전설적인 대통령을 부활시킨다면, 미국도 회복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대 DC 코믹스에서는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의 삼각관계를 늘 재미있는 소재로 다루었다. 원더우먼은 때론 슈퍼맨의 아내가 되고, 때론 배트맨의 애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원래는 슈퍼걸이나 배트걸처럼 그들의 짝이 되려고 탄생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울 때 중재자 역할을 하고, 각자 자신만의 정의를 외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에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며, 슈퍼맨과 배트맨이 타락할 때 그들을 호되게 꾸짖고 바로잡는 역할을 할 때 가장 멋있게 그려진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어떻게 배트맨과 슈퍼맨을 봉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둠스데이의 등장으로 가능해지지만, 이전에 그들이 우선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생긴다. 증오가 함께하는 팀이 팀워크를 발휘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영화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은 않겠다. 각자 판단하시길 바란다. 나로선 그냥...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되레 참신한 느낌 정도였다고 말씀드리겠다.
옛 노장 히어로들과 그 뒤를 이었던 슈퍼맨, 배트맨, 그린랜턴 같은 간판급 히어로까지 다 죽거나 은퇴하고 바통은 젊은이들에게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네론이라는 악마가 히어로들을 유혹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론은 카일 레이너에게 죽은 여자 친구를 되살려 주겠다고, 배트맨에게는 죽은 제이슨 토드를 되살려 주겠다고, 그리고 키드 플래시였다가 플래시의 옷을 물려받은 월리 웨스트에게는 죽은 배리 앨런을 되살려 주겠다고 유혹하였고, 악마와 거래한 악당들은 더욱 강한 힘을 얻으면서 지구를 위협한다.
카일 레이너의 여자 친구가 냉장고 속 시신으로 발견되는 내용이 연재되던 1999년, 만화 팬이었던 게일 시몬은 '냉장고 속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남자 히어로의 이야기를 전개할 목적으로 강간, 살인, 고문, 능력 박탈 등의 상황에 처하는 여자 주인공의 리스트를 정리했다. 남자 주인공들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여성들. 그녀들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과연 타당할까? 그녀가 던진 묵직한 질문이었다.
최근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처럼 우리가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소재인 만화도 하나 있다. 바로 배트맨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이자 최근 가장 '뜨는' 악당인 할리퀸의 창작자 폴 디니가 거장 알렉스 로스와 수년간 공들여 내놓은 『JLA: 자유와 정의』다. 어느 날, 아프리카에 의문의 전염병이 발생한다. 하루 만에 급파된 구조팀마저 병마에 쓰러진 상황에서 정부는 저스티스 리그에 긴급 지원을 요청한다. 리그는 정부 역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명심하게. 정부는 우리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배트맨).
아들 같은 로빈과 딸 같은 배트걸이 모두 그에게 죽거나 불구가 되었으니 조커를 향한 분노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쌓인 상황. 거기에 어린 시절을 함께한 절친 토머스마저 조커의 손에 죽임을 당하자, 배트맨은 급기야 이 모든 죽음과 불행이 자신의 소극적 대응 때문이라 여기고 마침내 조커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배트맨에게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으니, '살인하지 말라'. 아무리 악독한 적이라도 자신의 임의가 아니라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불살(不殺)의 신념이었다. 조커는 바로 이 점을 노렸다. 그는 배트맨이 스스로 원칙을 깨고 자멸하게 하는 이 도박에 자신의 목숨마저 미끼로 걸었던 것이다.